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문단 편집) === 종교 === > 대니네 동네에는 그의 아버지의 추종자들, 즉 칙칙한 옷을 입은 러시아 하시드파 유대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그들의 관습과 인식은 그들이 버려두고 온 땅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사모바르]]에 차를 끓였고, 각설탕을 입에 물고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들은 [[우크라이나 요리|고향 음식]]을 먹었으며, 때로는 러시아어 때로는 [[이디시어]]로 말을 주고 받으면서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 > 탈무드의 아들(The Chosen) / 체임 포톡 저 우크라이나 서부에서 폴란드에 이르는 지역은 근세 유대교 하시딤파의 본산이었다.[* 이들 하시딤파 유대인들은 리투아니아와 벨라루스 일대의 리트박 유대인들과 종교 전례 및 해석 차이로 대립하는 관계였다.] [[폴란드-리투아니아]]가 [[폴란드 분할]]로 멸망하고 우크라이나 중부 지역까지 장악한 [[러시아 제국]]은 폴란드 리투아니아와 다르게 유대인들을 박해하였으며, 우크라이나 현지인들의 불만의 화살을 평소에 서로 사이가 나쁜 유대인들에게 돌리는 일이 많았다. 상술한 것처럼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 우크라이나에서 [[포그롬]]([[반유대주의]] 유혈 폭동)이 빈발하자 많은 유대인들이 미국 이민을 택했다. 오늘날 미국 유대인 인구 가운데 92% 이상이 아슈케나짐 유대인인데 이들 중 상당수가 우크라이나 출신이기도 하다. 물론 당시에는 우크라이나가 독립국이 아니었으므로 당시 미국인들은 이들을 러시아계 유대인으로 취급하였으며, 미국으로 이민한 유대인들은 현지의 반유대주의를 피해 이주한 경우이니만큼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와는 척을 진 상황이었다. 미국 유대인 중 적지 않은 수가 우크라이나 지역 출신이지만, 이들에게는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별로 없는 편이다.[* 다만 소련 해체 이후 이주해온 유대인들의 경우에는 우크라이나계 정체성을 부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자신을 우크라이나계 미국인으로 규정하는 인구의 상당수는 [[정교회]],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을 믿고 있다. 미국 내 [[우크라이나 그리스 가톨릭]] 교세는 4만여 명에 달하며 신도 수가 이민에 힘입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물론 우크라이나 출신 미국인의 대다수는 엄연히 [[아슈케나짐|아슈케나지 유대인]]들로 [[유대교]]를 믿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우크라이나 출신 이민자들의 이민 비자 발급을 대단히 까다롭게 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에 같은 유대인 친척이 있다는 것이 증명되지 않는 이상 아니면 이민이 매우 힘들다고 한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이주한 우크라이나계 유대인들은 우크라이나인 정체성 대신 우크라이나 출신 유대인 정체성이 훨씬 강한 편이었지만, 소련 붕괴 이후 미국으로 이주한 우크라이나 유대인들은 소련 시절 교육의 영향 등으로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정체성 외에도 우크라이나인이라는 정체성도 강한 편이라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